문화재명 경주구황리금제여래좌상
(慶州九黃里金製如來坐像)
분     류  금동불
수     량 1구
지 정 일 1962.12.20
소 재 지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1국립중앙박물관
시     대 통일신라시대 초기
재료,재질 금속류  

높직한 연화좌대(蓮華座臺)에 결가부좌(結跏趺坐)하고 광배(光背)도 완전하게 남아 있는 금제불상(金製佛像)이다.
  원형의 복판(複瓣) 복련(伏蓮) 위에 원절형(圓節形)의 중대(중대)를 사이에 두고 중판(중판)으로 된 원형 상대(上臺) 위에 안치되어 있다.
  큼직한 육계(肉계)가 있는 소발(素髮)의 얼굴은 풍만하며, 두 눈은 정안(正眼)이고, 입가에는 매우 희미하게 미소를 풍기고 있다.
  목에는 삼도(三道)가 보이고, 오른손은 들어서 손바닥을 보이며, 왼손은 왼쪽 무릎 위에 얹고 있다.
  가슴을 드러낸 통견(通肩)의 법의(法衣)는 비교적 얇고 앞면에서 반원의 옷주름이 여러 겹 나타나 있다.
  이 의문(衣文)은 무릎을 거쳐 밑으로 흘러내리게 하여 상현좌(裳懸座)의 형식을 따르고 있는데, 좌우대칭의 수법이 사라져 가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.
  광배(光背)는 두광(頭光)과 신광(身光)이 연결된 판금(板金)으로, 두광에는 연화(蓮華)를 중심으로 인동당초(忍冬唐草)와 그 가장자리에 화염문(火焰文)이 투각(透刻)되어 있고, 신광은 찍어낸 인동당초문(忍冬唐草文) 주위에 다시 인동당초와 화염문을 투각해 놓았다.
  이 불상은 불신(佛身)과 대좌·광배가 분리되도록 만들어져 있는데, 상현(裳懸) 습벽(襲벽) 뒤에 돌기(突起)를 마련하여 대좌에 고정되도록 되어 있다.
  불신·광배·대좌에 금빛이 찬란하나, 대좌만은 금의 함량이 적은지 동오(銅오)이 나타나 있다.
  이 불상은 금제여래입상(金製如來立像)(국보(國寶) 제80호)과 함께 1934년 경주시(慶州市) 구황리(九黃里) 삼층석탑(三層石塔)(국보(國寶) 제80호)에서 발견된 것으로, 불상을 장치(藏置)하였던 사리함(舍利函)에 기명(記銘)이 있어 신룡(神龍) 2년(신라(新羅) 성덕왕(聖德王) 2년, 706)에 납치(納置)한 사실을 알 수 있고, 따라서 연대 추정에 시사(示唆)를 주고 있다.
  그러나 명기(銘記)에는 1구(軀)를 격납(格納)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, 발견된 것은 2구(軀)여서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.
  동시에 발견된 입상에 비하면 이 불상의 조성연대가 떨어지는 것 같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