문화재명 백률사금동약사여래입상
(栢栗寺金銅藥師如來立像)
분     류 금동불
수     량 1구
지 정 일 1962.12.20
소 재 지 경북 경주시 인왕동 76 국립경주박물관
시     대 통일신라시대 8세기
재료,재질 동조도금

원래 경주시(慶州市) 북쪽 소금강산(小金剛山)의 백률사(栢栗寺)에 있던 것을 1930년 국립경주박물관(國立慶州博物館)에 옮겨 놓았다.
  등신대(等身大)의 거대한 입상(立像)으로서, 보발(寶髮)은 나발(螺髮)이고 얼굴은 풍만하여 온화하게 보인다.
  정시(正視)한 두 눈, 반월(半月)의 두 눈썹, 높은 콧날, 큼직하게 다문 입 등에서 자비가 넘친다.
  두 귀는 길고 목에는 삼도(三道)가 뚜렷하다.
  두 손은 일찍이 잘려나갔으나, 손목의 위치와 방향으로 보아 오른손은 들어서 시무외(施無畏)의 인(印)을, 왼손은 수평으로 들어서 약호(藥壺)나 보주(寶珠)를 받치고 있었던 듯하다.
  법의(法衣)는 통견(通肩)인데 가슴 앞에는 치마의 매듭이 보이고, 두 팔에 걸쳐서 흘러내린 법의(法衣)는 옷자락에서 치마의 자락과 더불어 약간 벌어져 있다.
  앞면의 옷주름은 반월(半月)의 연속선과 중앙에서 사이를 둔 불연속 융기선이 교체되면서 도식적(圖式的)으로 표현되고 있다.
  뒷면은 공동(空洞)을 이루었으며, 가슴부분 뒷면에는 광배(光背)를 달았던 꼬투리가 있다. 도금(鍍金)은 없어지고, 전면(全面)에는 주홍과 녹색으로 칠했던 흔적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.
  정면으로 꼿꼿이 서 있는 이 상은 일부 손상을 입었지만, 위장부(偉丈夫)의 당당한 체구, 능숙한 조형기법, 웅건한 의문처리(衣文處理) 등, 불국사(佛國寺)의 두 금동상(金銅像)과 함께 신라(新羅) 금동상의 대표작이며, 조상(造像)연대도 전기 두 불상과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.